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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삶은 기계를 만들었고, 두 번째 삶은 나를 만듭니다. 건설기계 연구개발 엔지니어 1st Jangineer에서, 이제는 나와 가족의 삶을 다시 설계하는 2nd Jangineer. 고전 한 줄의 통찰, 독서와 성찰, 골프 스윙의 감각, 주식 차트 속 흐름, 글쓰기... 다양한 도구를 통해 삶을 조립하고 해체하고 다시 그립니다. 이곳은 매일의 감각이 쌓이는 곳. 고민에서 자유로, 삶을 다시 짓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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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접지와 누전(외전 1) - FMEA, 정말 중요하구나, 접지 누락 경험 후 다시 보는 설계자의 책임
    Jangineer's PMP - 삶의 프로젝트 2025. 4. 25. 11:55

    이번에 집에서 전기 콘센트 접지 누락 시공 문제를 겪으면서,
    단순한 시공 실수 이상의 것을 느꼈다.

     

    처음엔 그냥 “콘센트 하나 정도겠지” 싶었는데,
    하나의 접지 누락이 누전차단기 무력화,
    감전 및 화재 위험,
    그리고 결국은 전체 전기 시스템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직접 겪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기 시스템의 세부회로를 전부 알 순 없지만,
    전체 시스템의 안전성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가
    얼마나 중요하고,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책임지고 설계하는 사람은 결국 설계자다.

     

    예전에 유압시스템 설계하면서

    FMEA(Failure Mode and Effects Analysis, 고장형태 영향분석) 할 때가 떠올랐다.
    정말… 싫었다.

    “아니 내가 나름대로 잘 설계했는데
    왜 또 다 같이 모여서 문제점 찾아야 해?”
    “시험팀은 또 뭘 의심하는 거야?”
    "품질팀은 과거 고장사례를 뭐 이리 많이 갖고 온거야?"
    “고참은 왜 자꾸 이걸 빼고 다시 해보라고 하지?”
    “바빠 죽겠는데 하루 날리고, 집중도 안 되는 회의는 왜 이렇게 길어?”

     

    그랬다.
    FMEA는 귀찮고, 비효율적이고, 시간만 잡아먹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 느꼈다.

    그게 다 사고가 나기 전에 멈추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걸.
    결국 그게 FMEA의 본질이었다.

     

    FMEA란?

    Failure Mode and Effects Analysis:
    설계나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고장 가능성(Failure Mode)을 사전에 분석하고,
    그 고장이 발생했을 때의 영향(Effects)을 평가해서
    예방 조치를 설계에 반영하는 체계적인 사고예방 기법이다.

     

    한마디로,
    “터지고 나서 대응하지 말고, 미리 막자”는 사고방식이다.

     

    나는 유압 시스템을 설계했었다.
    압력, 흐름, 누유, 제어 정밀성, 열, 드레인(Drain) 경로, 리턴(Return) 경로, 구조물 진동/소음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시스템.
    그 속에서 배관 하나, 밸브 하나, 드레인 하나 잘못 연결되면
    실린더 폭주, 밸브 과열, 펌프 파손, 그리고 작업자 위험으로 바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번 접지 누락 사건을 보며
    전기 시스템도 구조는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

    • 전선은 유압 호스,
    • 접지는 드레인,
    • ELB/MCB는 릴리프 밸브,
    • 콘센트 하나는 실린더 하나,
    • 스위치 하나는 솔레노이드 밸브 하나.

    어디 하나만 잘못되면, 시스템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보통 사람을 향한다.

     

    법은 ‘최소 기준’일 뿐이고,
    기술은 그 이상을 봐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은,
    설계자의 상상력과 책임감의 깊이만큼만 안전해진다.

     

    예전엔 FMEA가 싫었다.
    이젠 FMEA가 고맙다.
    그리고 다시 설계자로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그걸 정말 다 고려했냐?”
    “이 시스템이, 사람이 쓰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았냐?”

     

    FMEA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설계였고,
    내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었다.

    이제는 절대, 그걸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집 전기 시공자에 대해 환멸이 느껴진다.

    전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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