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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니어(Jangineer) - 삶을 설계하는 엔지니어
영화 '패왕별희'를 처음 본 것은 2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장국영의 강렬한 연기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기억나지만,영화가 왜 하필 ‘패왕별희’라는 경극을 중심에 놓았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최근 초한쟁패의 역사를 읽다가 문득 이 영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패왕 항우는 왜 실패했을까‘패왕’은 서초패왕 항우다.진나라 말, 항우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진의 주력군을 격파했다.‘역발산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다.그러나 항우는 진을 무너뜨린 뒤 새로운 천하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천하를 제패하는 것과 천하를 운영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전쟁에서 정치로, 파괴에서 건설로, 개인의 무력에서 사람과 제도를 운영하는 능력으로 넘어가야 했다.항우는 자신을..
독서를 통해 얻는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은유와 연결의 능력이라는 말을 들었다.처음에는 은유라고 하니 문학적인 표현을 잘하는 능력을 말하는 줄 알았다.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은유는 조금 다르다.서로 전혀 다른 것들 사이에서 같은 구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많이 읽으면 세상이 연결되기 시작한다책을 읽다 보면 묘한 경험을 한다.지금 읽고 있는 책 때문에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갑자기 이해될 때가 있다.“아, 그때 그 책의 내용이 이 뜻이었구나.”새로운 지식을 하나 얻은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두 지식 사이에 연결이 생긴 것이다.장자의 무위(無爲)를 읽는다.스토아철학의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읽는다.'바가바드 기타'에서는 행위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헤밍웨이의 '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이야기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스토아 철학과 고대 인도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다르게 보인다.이 소설은 어쩌면 결과와 행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결과만 보면 산티아고는 실패자다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85일째 홀로 먼바다로 나가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사투 끝에 물고기를 배에 묶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공격을 받는다.산티아고는 끝까지 싸운다.그러나 항구에 돌아왔을 때..
법륜스님의 강연을 듣다가 인상적인 문장을 만났다.“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거창한 가르침이 나올 것 같은 질문에 답은 뜻밖에 간단했다. “그냥 산다.” 처음 들으면 허무하다.목표도 의미도 없이 대충 살라는 말인가?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반대였다. 그냥 산다는 것우리는 살아가는 것 자체에 수많은 조건을 붙인다.성공해야 한다.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자식이 잘되어야 한다.행복해야 한다.적어도 의미 있는 인생은 살아야 한다.그런데 여기서 ‘반드시’를 하나씩 빼면 삶은 훨씬 단순해진다.배가 고프면 먹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한다.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도전한다.실패하면 이유를 살펴보고 다시 해본다.그냥 산다.이 말을 생각하다가 문득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떠올랐다. ..
최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몇 편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왜 ‘즉문즉답(卽問卽答)’이 아니라 ‘즉문즉설(卽問卽說)’이라고 했을까?몇 편을 계속 보다 보니 이유가 보였다.즉문즉설은 질문에 정답을 주는 자리라기보다 질문자가 자신의 문제를 보는 관점을 바꾸게 만드는 대화에 가까웠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법을 바꾼다사람들의 질문은 대개 남에게서 시작한다.“남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자식이 공부를 안 합니다.”“직장 상사가 힘들게 합니다.”즉,“저 사람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그런데 법륜스님의 질문은 자꾸 방향을 바꾼다.“남편이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합니까?”“자식이 반드시 부모 뜻대로 살아야 합니까?”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질문이 이렇게 바뀐다.“저 사람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처음 접하면 흔히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욕심을 버리고 검소하게 살아라.”틀린 해석은 아니다.하지만 카너먼과 탈러의 행동경제학,이스털린의 행복경제학을 알고 다시 읽어보면 '무소유'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인간에게는 묘한 특성이 있다.가지기 전에는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가지고 나면 내 것이어서 놓지 못한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지고 다시 새로운 것을 원한다.법정 스님은 이 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무소유라는 말로 표현했다. 난초를 소유했는데, 난초가 나를 소유하기 시작했다'무소유'를 대표하는 것이 난초 이야기다.법정 스님은 난초를 얻어 정성스럽게 키운다.물을 주고 햇볕을 살피고 상태를 확인한다.처음에는 난초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외출하면서도 난초..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읽다가 아주 단순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그런데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다시 떠올려보니, 이 문장이 전망이론과 묘하게 연결된다.달라이 라마가 인간의 본성을 철학적으로 바라보았다면,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인간이 실제 선택의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둘은 전혀 다른 길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의 행복과 고통이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이익 앞에서는 안전하게, 손실 앞에서는 모험적으로전망이론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이익과 손실 앞에서 서로 다른 위험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해보자.A. 확실하게 100만 원을 받는다.B...
요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몇 편 보고 있다.'반야심경'을 여러번 읽고 나서 봐서인지,평범한 인생 상담처럼 들리는 이야기 뒤에 깔린 불교적 사고방식이 전보다 훨씬 잘 보인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거래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법륜스님은 인간관계에서 거래 자체를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필요와 이익을 고려하며 관계를 맺는다.친구를 사귈 때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어느 정도 조건을 본다.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거래라면 거래인 줄 알고 하면 별문제가 없다.조건이 맞으면 관계를 계속하고, 맞지 않으면 조건을 조정하거나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문제는 거래를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생긴다.법륜스님은 강연에서 거래, 우정, 사랑을 있..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 책의 원제는 'The Art of Happiness: A Handbook for Living'이다.한국어 제목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지만,책을 다 읽고 나니 원제인 'The Art of Happiness'가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여기서 Art는 예술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배우고 연습해서 익히는 기술 또는 기예(技藝)에 가깝다.행복은 좋은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다.행복도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기술이다.그리고 이 책을 아주 거칠게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자비를 실천하는 기술을 익혀 행복해져라. 불교 책인데 스토아 철학과 앨버트 엘리스가 떠올랐다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그런데 책을 읽는..
최근 여권 내부의 갈등을 보면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Skin in the Game'이 자꾸 떠오른다.유시민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오만한 권력자”라고 평가하고,김민석 대표가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출마했다며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픽’하는 것은 “왕정·귀족정으로 가는 것”이라고까지 비판했다.정청래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내 강경파와 조국혁신당의 관계,김어준을 비롯한 정치 미디어의 영향력까지 바라보고 있으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탈레브가 한국 정치를 알고 있었다면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봤을까?물론 탈레브가 이들에 대해 실제로 평가한 것은 아니다.이 글은 탈레브의 'Skin in the Game'에 나오는 비대칭, IYI(Intellectual Yet Idiot), 완고한 소수의 지배, 복잡계 등에 대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