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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너와 나, 그리고 돌멩이Jangineer's 길(道) - 실행 2025. 5. 18. 00:00
실존주의 × 불교 × 도교 × 싯타르타, 존재에 대한 네 가지 시선
1. 어쩌다 보니 '나'
나는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누가 언제, 왜 나를 여기로 보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눈을 떴을 뿐이고, 이미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실존주의: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다.”
불교:
“나는 오온(五蘊)의 일시적 조합일 뿐이다.”
도교:
“흐름 속에 잠시 나타난 형상이다.”
2. 어쩌다 보니 '너'
너도 마찬가지다.
너도 네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다.
이름, 성격, 사고방식, 배경, 모두 우연과 인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아가고 있다.불교의 연기(緣起):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생긴다.
도교의 무위(無爲): 서로 얽지 않고 흐를 때 조화롭다.
실존주의의 타자: 타인은 지옥일 수도, 구원이 될 수도 있다.3. 그리고 ‘돌멩이’
'싯타르타'에서 싯타르타는 말한다:
“나는 돌멩이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돌멩이는 단지 돌멩이이기 때문이다.”돌멩이는 설명하지 않는다.
어필하지도 않고, 설명도 없고, 고통도 없다.
그저 거기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살아가는 존재다.4. ‘인간’과 ‘돌멩이’의 차이
- 인간은 이유를 찾고, 의미를 만들고, 불안해한다.
- 돌멩이는 의미를 만들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 그래서 돌멩이는 ‘완전’하다.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는다.
'싯타르타'는 그 돌멩이처럼,
그저 존재하는 것의 위대함을 말한다.5.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너와 나, 그리고 돌멩이.
우리는 모두 이유 없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서로를 탓할 이유도, 증명할 필요도 없다.”질문
- 나는 내 존재를 너무 설명하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 다른 사람도 사실은 ‘던져진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는가?
-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사물, 돌멩이 하나조차,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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