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아십니까?”

 

한때 이 질문은 웃음 반, 불쾌함 반의 상징이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다가와 도를 말하면,
그 다음은 으레 우주의 기운, 조상 문제, 제사, 봉투였다.
한참 젊은 시절, 나 역시 그 말에 걸려 시간을 뺏겼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도’라는 말만 나와도
“아, 또 시작이네” 하는 반감이 생기는 사람이 많다.
도교는 잊히고, 도는 조롱의 아이콘이 되었고,
한국에서 도가 철학으로 작동하기 어렵게 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유교는 제사로 남고, 불교는 힐링으로 남고, 도는 사기로 남았다

  • 유교는 ‘효’와 ‘제사’로 남았다
  • 불교는 ‘마음의 평안’과 ‘명상’으로 남았다
  • 그런데 도교는?
    "도를 아십니까?"라는 사기 마케팅으로 왜곡되었다

그건 도가 아니라, 도를 가장한 장사였다.
진짜 도는 조용하고, 말이 없고, 억지로 끌지 않는다.

 

도(道)는 원래, 가장 실천적인 철학이었다

  • 억지로 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지: 무위(無爲)
  • 이름 붙이지 않아도 작동하는 원리: 도(道)
  • 존재의 질서를 관통하는 흐름: 자연(自然)

도(道)는

  • 사람을 조정하려 하지 않고,
  •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 스스로 그러하게 두는 질서 그 자체다.

 

그래서 말한다

내가 쓴 '성공은 무위이다'는
그런 의미에서 ‘도를 아십니까’에 대한 회복 선언문이 되고 싶다.

나는 도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단지 도처럼 살고 싶었고,
도처럼 써내려가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도는,
어디선가 비싸게 팔리는 종교 마케팅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그러나 가장 깊은 삶의 태도다.

도를 아십니까?
그 질문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겸손함에서 진짜 도는 시작된다.

 

“도(道)를 아십니까?”

 

나는 도가 뭔지 모른다.
단지, 다르게 부를 만한 이름이 없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길...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이름 없음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다.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그러므로 욕심이 없으면 그 깊이를 보고, 욕심이 있으면 그 경계를 본다.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양자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이 둘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이름만 다르며, 모두 신묘하다고 할 수 있으니,
더욱더 신묘한 것이 모든 이치의 문이다.
- '도덕경'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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