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봐서 미안하다 - '뤽 베송', 존재와 무(無)
예전엔 몰랐다.
총과 폭탄, 암살자.
뤽 베송의 영화는 시끄럽고 자극적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겠다. (오해일수도 있다...)
그는 총을 들고 ‘무위(無爲)’를 말하고 있었다.
그가 쏜 건 총알이 아니라, 존재의 질문이었다.
루시(2014년) - 자궁에서 무로
“When we understand everything, we become nothing.”
배 안에 숨겨진 약물이 퍼지며,
평범한 여성이 초월적 존재로 진화한다.
지식을 넘어서 뇌의 100%를 쓰는 순간,
그녀는 사라진다.
존재는 유에서 무로 간다.
이건 단지 액션 판타지가 아니다.
도덕경 1장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 같다.
제5원소(1997년) - 전지전능한 존재가 배운 것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지구에 대해 알게 된 순간, 그녀는 멈춘다.
폭력, 전쟁, 탐욕…
그 끝에서 그녀는 '사랑'을 배운다.
능력만으로는 구원이 없다.
‘절대’가 아닌 ‘연결’이 구원을 만든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다음 제5원소 공(空).
레옹(1994년) - 무가 유를 안았을 때
살인청부업자, 레옹.
아무것도 없이 살던 남자에게
어느 날 ‘소녀’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변한다.
무심한 존재가, 전부를 걸게 되는 순간.
죽음 앞에서 심은 한 그루 나무.
그 나무는 ‘존재의 감정’을 말한다.
니키타(1990년) - 시스템에서 탈출한 자
국가에 의해 살인자로 재구성된 한 여자.
니키타는 살지만 죽어 있었고,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그 선택은 폭력적 해탈이자,
“나는 나로 존재하겠다”는 선언이다.
뤽 베송, 그는 누구인가?
그의 영화는 겉보기엔 자극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총을 들고 무위를 말하고,
폭력으로 구원을 이야기하며,
액션으로 존재를 묻는다.
어쩌면 그는
프랑스판 노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나
예전엔 안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이제야 나는,
연결의 흐름, 존재의 무게, 해탈의 리듬을
조금씩 느낄 수 있다.
그건 투자와도 닮았고,
골프와도 닮았다.
억지로 쏘는 화살이 아니라,
스스로 날아가는 화살을 기다리는 일.
혹시 우리도,
뤽 베송이 던진 질문을 너무 늦게 눈치챈 건 아닐까?
# 부록 - 나름 나의 시각을 정리해 봤다.
1. 아래 4편 모두 “주인공의 존재 방식이 전환되는 서사 구조”를 갖는다
영화 | 초반 상태 | 전환 계기 | 후반 상태 |
루시 | 인간, 피해자 | 약물 주입 | 무형의 존재, 無로의 귀결 |
제5원소 | 신적인 존재, 혼란 | 인간과 사랑 | 감정의 통합, 구원자 |
레옹 | 킬러, 무감각 | 소녀와의 관계 | 감정을 품고 죽음을 선택 |
니키타 | 시스템 속의 병기 | 감정, 사랑 | 제도 탈출, 독립된 인간 |
→ 모두 존재의 전환, 또는 '탈(脫) 규정성'을 통해
무위에 가까운 상태로 흐르는 서사적 구조를 따른다.
2. “폭력과 구조의 언어”를 통해 “구원과 해탈”을 말한다
- 액션, 총, 시스템 → 모두 형식적 폭력의 언어
-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등장인물은 '벗어나려는 자들'
- 그 벗어남은 ‘더 강력한 힘을 얻는’ 게 아니라, '덜어내고 사라지는’ 쪽
- 이것은 노자 철학의 핵심: 무(無), 무위(無爲)
3. '결과'가 아닌 '방향'
- "이 영화 어떻게 끝났지?"가 아니라
- "이 인물, 어떤 흐름 속에서 존재했지?"로 보면,
→ 수직적 결론이 아니라, 수평적 흐름을 보는 시선,
→ 그것이 바로 동양적 철학자 또는 전략가의 시선이다.
# 부록 - 일반적인 평가는 이런 듯:
1. 시각적 스타일리스트
→ 강한 색채, 감각적 영상미, 음악과 액션의 융합
2. 팝 철학자 또는 스타일리시한 엔터테이너
→ 철학보단 ‘쿨한 느낌’, ‘독특한 여성 캐릭터’, ‘비주류적 영웅’
3. 비판적 시각
→ “내용은 얄팍한데 포장은 화려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음
→ 특히 '루시'나 '제5원소'는 “B급 감성에 A급 예산”이란 말도 있었음